신(新)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용블리 김용임
신(新)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용블리 김용임

세상에는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기존의 것을 싫증 내기도 전에 우리는 또다시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그렇게 새것으로 교체되는 주기는 점점 더 짧아져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고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바짝 쫓는다.
기성세대의 음악일 줄만 알았던 트로트 세계마저도 갑자기 불어온 흥행 열풍에 새로운 얼굴로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여전히 사랑받는 트로트 여제 김용임이 있다. 실제로 마주하니 아직까지 잃지 않은 러블리함에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의 매력적인 눈웃음과 함께 용며들며 트로트 레전드의 장수 비결을 파헤쳐 보자.
"청춘엔 기준이 없는 거란 걸 지금도 한창때란 걸 잊지는 말아요. 오늘"
김용임의 ‘오늘이 젊은날’ 中

요즘 많이 바쁘시죠?
맞아요. 어떻게 하다 보니 50대에 들어 전성기를 누리는 특혜 받은 가수가 되었네요. 사실 그동안 심적으로 고생이 많았거든요.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2년 가까이 공연이 거의 없고 대중들과 만나는 자리가 사라지다 보니 지금도 많은 가수들이 힘들하고 있죠. 하지만 최근에는 방송 활동으로 많이 바빠졌어요. 현재 KBS 6시 내고향, 아침마당에도 계속 출연하고 있고요. 오늘도 인터뷰 오기 전에 생방송 촬영을 마치고 왔어요. 중년에 들어서 이렇게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니 마치 새로운 인생을 사는 기분이네요.(웃음)
현재 대한민국은 트로트 열풍으로 굉장히 뜨거워요. 코로나로 인해 공연이 어려운 상황에도 그 열기가 아직까지 식지를 않고 있는데요.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세요?
사실 트로트를 전통을 고수하는 기성세대의 음악으로만 알고 계시지만 그 안에서도 꾸준히 변화하고 있었어요. 20년 동안 음악을 쉬지 않고 해 오면서 느낀 것은 트로트를 즐겨 듣는 분들 역시 기존의 것에서 벗어난 새로움을 좋아해 주신다는 거예요. 윤정이가 ‘어머나’를 불렀을 때만 보아도 젊음에서 풍기는 귀엽고 예쁜 것도 있었지만, 기존의 전통 트로트보다는 좀 더 가벼운 창법에서 오는 신선함에 귀 기울이게 되고, 거기에 노래까지 잘하니 더욱 사랑 받았죠. 그 후로는 트로트에 국악을 접목한 가인이가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받기도 했고요. 지금은 국악 뿐만 아니라 EDM 등 다양한 장르를 접목한 트로트가 매체를 통해 주목 받으면서 요즘 세대들의 관심도 끌고 있어요. 전통 트로트에서 세미 트로트 그리고 뉴트롯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불리기까지는 트로트의 끊임없는 변화가 지금의 흥행에 한몫했다고 생각해요.
| 새로운 환경과 떨림을 두려워 말자

가요계 전체에 지각 변동이 일면서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현재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계세요. 그 시점이 작년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 최종 우승을 거머쥔 이후가 아닌가 싶은데 당시 소감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상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행복이죠. 사실 처음에는 경연 자체에 부담을 많이 느꼈어요. 훌륭한 선후배 가수들이 많이 출연하기도 했고요. 때문에 중간에 하차하는 가수들도 많았고, 저 또한 하차 의사를 비추기도 했죠. 결국 제작진이 말려 끝까지 이어가긴 했지만요. 경연 초반부터 부담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후배 가수가 먼저 1등을 하자 더욱 마음이 초조해지고 조급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중간부터 제가 우승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좀 더 여유롭게 즐기면서 무대를 했던 것 같아요.
| 도전이 있어야 기회를 마주한다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생계유지를 위해 불렀던 메들리 음반이 뜻밖의 히트를 하게 돼요. 그때 상황을 좀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메들리 음반은 80년대 초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요. 그 당시에는 메들리 음반이 나오면 제일 먼저 도매상에 선보였고, 개중에 마음에 든 음반이 있으면 100개, 많게는 1000개씩 사가요. 가장 큰 도매상이 있던 청계천을 기점으로 지방마다 도매상이 분포해 있는데, 청계천에서 지방으로 납품하면 이는 다시 소매상으로 전달되어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나 리어카에 실어 판매되죠. 그런 식으로 메들리 음반이 전국적으로 퍼져요.
힘들었던 과정을 딛고 다시 제대로 음악을 해야겠다 마음먹던 차에 메들리 음반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 당시 적은 돈이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용돈벌이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메들리 음반은 당시 인기 있던 곡들을 모두 습득하여 22곡에서 23곡 정도를 부르는데, 그때 타이틀 곡이 오은정 선배곡이었던 울산아리랑이었어요. 사실 히트가 되었던 곡은 아니었지만 제가 부른 울산아리랑을 사람들이 좋아해 주시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죠. 마치 미스트롯 양지은이 커버한 제 노래 ‘빙빙빙’처럼요. 빙빙빙도 그렇게 히트를 친 곡은 아니었거든요.(웃음)
메들리 음반으로 인기를 얻은 후, 무명가수의 삶에서 벗어나셨나요?
메들리 인기 덕에 ‘트로트 메들리 4대 천황’이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지만 그때까지도 얼굴 없는 가수나 다름없었어요. 대중들에게 제 곡으로서 저를 제대로 알리게 된 건 아무래도 ‘사랑의 밧줄’ 이후라고 얘기할수 있죠. 사실 사랑의 밧줄 녹음할 때만 해도 음악 인생 마지막 곡이라고 생각하고 불렀어요. 이 노래마저 안되면 더 이상 끌고 나갈 힘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죠? 이 또한 우연한 기회로 찾아오는데 사실 이 곡의 원래 주인은 울산아리랑의 오은정 언니거든요. 당시 본인에게 맞지 않다며 들려줬었는데 제가 불렀을 때는 입에 딱 붙더라고요. 결국 그 곡이 저한테 오게 되었죠.

| 연습은 언제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요즘 많은 트로트 후배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가수로서의 오랜 경력과 더불어 인생 선배로서 조언해 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 주시고 싶으세요?
2-30년대 가요를 들어보면 꺾는 소리가 굉장히 편안하고 부드럽게 들려요. 일부러 꾸며 내는 소리가 아닌 그때의 감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소리였죠.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세대가 변하고 과거의 창법을 바탕으로 소리를 내보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자연스럽지가 않고 꾸며낸 듯 변질된 소리처럼 들려요. 요즘 친구들을 보면 트로트 창법은 무조건 꺾으면 된다하여 흉내만 내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생각이에요. 물론 처음에 모창을 하기도 하지만 자기화하는 것이 중요하죠. 듣는 사람이 편안한 본인만의 창법을 연구하고 연습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해요.
노래라는 것이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어리면 노래의 깊이감이 부족해서 어렵고, 나이가 들면 힘이 들어 어렵죠. 제가 생각했을 때 3-40대 목소리가 가장 전성기인 것 같아요. 고음과 저음 모두 문제 없이 소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나이죠. 확실히 50대 이후가 되면 힘이 떨어지게 돼요. 때문에 균일한 힘을 유지하기 위해선 복부의 힘을 기르고, 호흡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해요. 이 또한 연습만이 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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